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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드라마 속의 성수청과 국무(國巫)

작성자
총무
작성일
2015.08.22
첨부파일0
추천수
2
조회수
946
내용

http://cafe.naver.com/0688lifecom/925

NAVER 카페 "무교와 연화암"에서 인용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스토리 전개도 좋았지만 무녀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드라마 소재 중, 무당이 등장하여 시청률이 저조한 적이 없는 걸로 봐서 한국민은 모두 무당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당에 관심은 부족하더라도 최소한 신령(神靈), 귀신(鬼神)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현재 방송 중인 MBC '밤을 걷는 선비', TVN '오 나의 귀신님'이 그것이다. 

  '해를 품은 달'이 주목을 받으면서 무교인들은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성수청이란 곳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알아보기로 하자.

  성수청은 성신청(星辰廳)이라고도 불렸는데 조선시대 나라 무당인 국무(國巫)를 두고 국가와 왕실을 위해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치는 굿을 전담한 국가 공식 무교 전담기구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무교는 음사(陰邪)라 하여 배척하였는데 어떻게 국가에서 성수청을 두어 국가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치는 굿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무교는 옛부터 지금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의지하고 믿고 온 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심성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성수청이란 곳도 조선시대에서 갑자기 생겨단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더 나아가서는 통일신라시대에도 존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이라 하여 나라의 환란이 없도록 기도하는 일을 맡은 임시 관아로 명종 8년(1178년)과 고종 4년(1217년)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는 고려 왕실의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을 이어 성수청을 둔 것이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군 9년(1503년) 5월1일에 전교하기를 "성수청에 국무(國巫)를 둔 것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했으며 12년(1506년) 3월15일에 전교하기를  "성수청의 도무녀(都巫女)와 수종무녀(隨從巫女)들에게 잡역을 면제시켜주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국무라는 명칭은 왕실과 나라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무녀를 통칭하는 것으로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굿을 거행하는 국무는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 있었다. 조선시대에 국무가 굿을 했던 장소는 궁궐 뿐 아니라 조선 팔도 명산에서 시행됐는데 감악산, 목멱산, 송악 등이 굿판을 벌였던 대표 장소였다.  


  조선시대 공식적으로는 무녀를 탄압하고 배척하는 것 처럼 보이나 많은 곳에서 무녀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동서활인서는 많은 백성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국립의료기관이었는데, 활인서에 무녀들이 배치되어 한의사들과 함께 환자를 치료하게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동서활인서의 운영비는 무당들이 내는 무세(巫稅)로 충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인의 근본신앙이 무교이며 무교의 종교 지도자로서 무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사 기록으로 깨달을 수 있는 자료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104호로 서울새남굿을 지정하고 서울새남굿을 진행할 수 있는 무당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대우해주고 있는데 현대의 국가무당 국무(國務)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위로하고 국가 태평성대를 위해 정기적으로 새남굿을 공연하는 무당들은 조선새대 궁궐안의 성수청 국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나라굿을 하는 국무(國巫)는 한국인들이 보존해야 할 문화재적 가치가 있고 국가 자산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국무를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대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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